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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한국한의원 여예진 이사장님 인터뷰] 모두 위한 기도는 기복 아닌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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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6
  • 작성일
  •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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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768





여예진 한국한의원 이사장

(사중금박물관 관장)





여예진 이사장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불심이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불교를 받아들였다. 기도를 통해 부처님의 가피를 경험하고 평생 봉사하는 삶으로 회향하고 있다. 여 이사장은 부산학부모총연합회 회장, 부산한일라이온스클럽 회장, 민주평화통일위원회 부회장, 부산 유엔 홍보이사, 범어사 금정불교대학총동문회 21, 22대 회장을 역임했다. 통일부장관 표창장, 부산시장 표창장, 범어사 금정불교대학총동문회 공로패, 범죄피해자 치유와 회복을 위한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검찰총장 표창장 등 다수 수상했다.

봉사와 나눔의 삶

범어사 등 여러 불교대학 졸업

범어사와 30년 인연 이어

금정불교대 총동문회장 활동하며

동문회 무료급식소 20년 봉사

반찬배달, 문화탐방 등 봉사회향

“가장 보람 있었던 시절”

각종 봉사관련 수상 100여 건

제등행렬 등 부산불교 기둥 역할



“참 열심히 살았죠?”



부산시장 표창장, 통일부 장관 표창장, 검찰총장 표창장, 부산한일라이온스클럽 회장,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 봉사대상…. 방 안에는 상패들이 가득했다. 어림잡아 100여 개는 넘어보였다. 대부분 남을 도운 행적의 흔적이다. 상장과 상패의 키워드는 ‘봉사’와 ‘나눔’이다. 대부분의 상장과 상패는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보관돼 있다. 상장과 상패의 주인은 그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오직 자비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만이 부처님의 가피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온 여예진(65) 한국한의원 이사장을 1월 7일 사중금박물관에서 만났다.



 



봉사하는 삶 복된 삶



새벽 6시, 추운 새벽임에도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23년 동안 꾸준히 운영되고 있는 범어사금정불교대학총동문회 무료급식소 현장이다. 힘겨운 이웃을 위한 공양간이다.



어제 저녁부터 굶었다는 할아버지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밥을 받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추운 새벽에 장을 보고 들어온 봉사자들은 익숙한 장면인 듯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간다. 반찬거리를 풀어 다듬고 쌀을 안치며 능숙하게 음식을 준비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쉴 틈이 없다. 추운 겨울 새벽길을 뚫고 찾아온 손님들의 마음을 생각하며 봉사자들은 눈코 뜰 새가 없다. 지난 2년간 급식소 회장을 맡았던 여 이사장이 급식소의 모습을 떠올렸다.



부산 범어사역 근처에서 매주 목요일 문을 여는 무료급식소에는 800여 명의 어르신이 찾아오고 있다. 한 달 동안 식비만 400만원이 넘고 일 년으로 치면 5400만원이 필요하다. 범어사금정불교대학총동문회 회장을 지낸 여 이사장은 급식소 회장을 맡았던 그 때가 가장 보람 있었던 시절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여 이사장이 범어사와 인연을 맺은 지는 30년이 넘었다. 범어사에서 신행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여 이사장은 어느 날 부처님 말씀을 좀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여 이사장은 불교대학을 생각했고 그때부터 여러 불교대학을 찾아 공부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범어사금정불교대학이었고 졸업 후 자연스럽게 총동문회와 인연을 맺게 됐다.



“무료급식소가 처음에는 구서동 지하철 근처에서 시작했어요. 자리를 옮겨 본격적인 활동을 펼친 건 20년이 넘었죠. 매주 목요일이면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회장직을 맡은 건 2년이었지만 급식소와 여 이사장의 인연은 그 2년이라는 세월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 이사장이 회장직을 지낸 것은 오랫동안 쌓고 다져온 신뢰와 정이 바탕이 되어 만들어진 자리였다. 여 이사장은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범어사금정불교대학총동문회는 범어사의 활동 주역으로 매년 연등행렬을 주도할 뿐 아니라 삼보일배 정진, 동지팥죽 나눔, 자비의 떡국 판매 등 다채로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찰기행을 통한 문화탐방순례, 무료급식 지원 사업으로 개최하는 일일찻집, 범어사 전용 순환버스 동참금 지원, 독거노인 도시락 반찬 배달 등 동문회 활동은 범어사를 넘어 부산불교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리 잡았다.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총동문회 무료급식 봉사자들과 기념 사진. 앞줄 오른쪽 6번째.

여 이사장은 검은 정장에 꽂은 배지를 매만졌다. 배지에는 ‘바로 알고 바로 믿어 바로 행하자’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불교대학 학훈이다. 여 이사장은 “마음에 새기고 싶어 항상 잊지 않고 옷깃에 달아 둔다”고 했다. 범어사금정불교대학총동문회 활동은 여 이사장의 숨은 봉사현장 중 하나일 뿐이다. 수많은 상장과 감사패가 쌓여 있는 것을 보며 그동안 진행한 봉사활동에 대해 물었다.



“연탄 나눔을 해마다 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 전달, 조정위원, 마약퇴치 캠페인…”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뭘 이런 걸 설명을 해요? ‘봉사’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주변에 많은 도반들이 봉사를 했고 저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면서 물이 든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소속된 기관이 봉사단체여서 삶이 온통 봉사로 채워졌던 것 같아요. 복을 진짜 많이 받은 삶입니다.”



조금만 더 봉사와 나눔 활동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도 그녀는 말을 아끼며 미소만 지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여 이사장은 주소를 받아 적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전해오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어눌했고 거칠게 갈라져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이사장은 곧장 한의원으로 연락해 한약을 보내야 한다며 직원을 재촉했고 통화를 마칠 때 쯤 “돈은 제가 냅니다”라고 짧게 말했다. 약값을 안 받느냐고 질문하자 그녀는 크게 한 번 더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여예진 이사장은 지난해 3월 사중금 박물관을 개관했다. 사중금 박물관에는 30여년 동안 모은 불교전통문화재와 전통문화 작품이 모여 있다.

 



 



30년 모은 문화재로 박물관 개관 ‘전법행’



 



‘기복’ 넘어선 기도 신행과 수행

힘겨운 시절 기도 가피로 극복

어려운 시험 합격, 한의원 개원

기도하며 기도의 진정한 뜻 새겨

“가피로 얻은 행복 다시 회향해야” 

사중금박물관 열고 전법회향까지



 



기도로 이어가는 신행



여 이사장은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다녔다. 불심이 깊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절을 찾을 때면 언제나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절을 찾은 건 청년기에 접어든 스무 살 때였다. 누구나 그렇듯이 스무 살은 인생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중요한 때이다. 여 이사장 역시 인생의 많은 것들이 걸려있는 중요하고 간절한 시절이었다. 그 때 여 이사장은 부처님과 만난다.



“제발 시험에 합격할 수 있기를…”



여 이사장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서 기도했다. 간절함이 만든 꿈이었을까? 여 이사장은 그날 밤 꿈에서 청수그릇을 보았고, 아주 맑게 울리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여 이사장은 시험에 합격했다.



“시험에 합격한 기쁨도 컸지만 부처님의 가피를 경험했다는 것이 더 기뻤고 행복했어요. 그때 저는 확실히 알았어요. 기도의 힘을. 사람들은 ‘기복’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기도를 통해서도 신심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기도를 통한 신행은 남편을 만난 뒤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한의학 만학도였던 남편의 공부를 돕고 세 자녀를 키우기까지 여 이사장의 삶은 하루하루를 ‘견뎌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시린 손을 비벼가며 아이들의 얼굴을 만져 온기를 전해야 했고, 저녁 반찬거리를 살 돈이 없어 눈물을 훔쳐야 했다. 어쩌다 돈이 생기는 날에는 시장에 나가 조금이라도 싸게 그리고 많이 사서 아이들을 먹였다. 여 이사장은 자신은 배가 고파도 아이들의 입에 음식이 들어갈 때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동국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병원을 개원하기까지 1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여 이사장은 그 힘겨운 시간을 정성어린 기도로 극복했다. 덕분에 부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또 한 아이의 손을 잡고서 자갈길을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 데 1시간 반 정도 걸렸어요. 다시 돌아오려면 하루 3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지요. 반찬거리 살 돈은 없어도 부처님께 올리는 꽃을 한 송이 가슴에 품고 행여나 잎이라도 떨어질까 노심초사 했어요. 조심스럽게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면서 ‘정성’이라는 단어의 뜻을 새삼 알게 됐어요.”



여 이사장은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의 의미를 진심으로 깨달았던 순간이라고 했다.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이 다하도록 귀의하고 정성으로 받든다’는 의미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렇게 기도에 대한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였을까. 여 이사장의 기도는 ‘기복’이라는 말로 밀어둘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여 이사장과 남편 윤경석 원장은 1992년 10월 한국한의원을 개원했다. 환자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윤 원장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침술은 중풍 환자에게 탁월했고 국내 지방 한의원 가운데서 유일하게 중풍 부문 ‘코리아메디칼’ 대상을 수상했다. 침술뿐 아니라 한방 약품에서도 정성을 다했다. 고압저온 탕제기로 약효를 올렸고 현대화 포장 방법으로 시민들이 편리하게 약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왔다. 26년 동안 운영한 한의원은 부산시 선도기업(바이오 헬스 부분)으로 인증 받고 모범 납세자로 표창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한의학을 외국으로도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현재 한국 한의원은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한 외국인 환자 유치 의료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모든 발전에 안팎으로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여 이사장이다. 그녀는 남편이 오직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대외 활동에 최선을 다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시민을 위한 한의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그동안 인내한 결과에 대한 보상인 듯 입소문이 나면서 한국한의원은 명성을 얻었고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사장은 “모든 것은 변합니다. 지난 날 힘든 시간도 지금 얻은 성공과 명성도 모든 것은 변합니다. ‘제 것’이라는 게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을 되새기고 내려놓는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여 이사장이 전화기 속 할머니의 약값을 대신 했던 대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박물관 세워 전법 회향도



여 이사장은 최근에 새로운 명함을 새겼다. ‘사중금(沙中金)박물관 관장 여예진’이다. ‘사중금’은 ‘모래 속에서 금을 캔다’는 의미로, 참다운 가치를 알면 모래 속에서도 보석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으로 혜안(慧眼)을 상징한다. 여 이사장은 오랫동안 차 문화를 통해 익힌 안목으로 한국문화와 불교문화의 가치를 널리 세상에 알리고 싶었고, 사중금박물관은 그 의지의 실천이다. 여 이사장은 지난해 3월 31일 사중금박물관을 개관했다.



“민족의 혼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조상은 곧 전통을 의미하고 전통은 지금 현재의 뿌리이자 정신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문화말살정책으로 훼손된 우리 민족정신을 바로 잡고 아름다운 문화를 선양하는 것은 곧 저희를 바로 알고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여 이사장은 전통을 바로 아는 것이 참된 ‘힐링’이라 강조했다. 자신을 바르게 아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물관에는 여 이사장이 30여 년 동안 모은 공예품, 회화 등 작품이 500여 점에 이른다. 여 이사장이 가까이 두고 함께 하며 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한 점 두 점 모은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다. 소장품 중에는 많은 불교 관련 문화재도 포함되어있다.



“우리 전통문화의 많은 부분을 불교가 채우고 있어요. 우리가 오랜 세월 살아온 정신적인 뿌리에는 부처님 말씀이 곳곳에 녹아 있는 것이죠.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부처님과 만나게 되는 것이죠.”



여 이사장의 신행은 이제 봉사와 나눔을 넘어 전법의 길로 접어들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 이사장의 회향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면…



여 이사장은 힘겨운 시절을 기도를 통해 지나왔고 어려운 시간을 견디며 이룬 것들을 봉사와 나눔으로 회향하고 있다. 흔히들 기복에 치우친 신행은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여 이사장에게는 그 이야기가 부질없는 의문이다.



“모두를 위한 기도를 한다면 그것은 수행입니다.”



여 이사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기도가 기복에서 끝날 것인가. 수행으로 이어질 것인가는 그 기도의 형태와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여 이사장의 기도 역시 작은 기복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 이사장의 기도는 그 작은 의미를 넘어선 기도로 점점 커졌던 것이다. ‘모두를 위한 기도’, 이 시대가, 이 시대의 불자가 해야 할 기도가 아닐까. 오늘도 그는 ‘보살도’를 이어간다.





지난해 11월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총동문회에서 주최한 구법 삼보일배 정진에서 여예진 회장이 회원들에게 격려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총동문회 구법 삼보일배 모습. 선두에서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여예진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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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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